(주)하이즈 우리쌀은?

쌀을 '화초'로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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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이즈 작성일17-06-05 15:26 조회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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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쌀 - 쌀을 '화초'로 키워보자

 

[삼방재일월기 10.] 모내기 마치고 상자논을 심으며

2년차 농사꾼의 농사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정혁기 농민은 서울대 농대를 나왔지만, 농사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로 올해 두 해째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의 농사일기를 통해 농사짓기와 농촌과 농민들의 애환과 생활상을 접해봅니다. [편집자주]

 

정혁기 농민은 현재 친환경농업의 과학화를 추구하고 있는 사단법인 흙살림의 삼방리농장(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부설 민족민주연구소 부소장, 우리교육 이사, 월간 말과 디지털 말 대표이사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등을 역임했다.

 

스티로폼 상자에 6월 9일 벼를 심었다. 두개 상자에 각 3줄 15포기씩 30포기, 30품종을 심었다. 5월말 6월초는 모내기 철이어서 모내기를 마무리하고 남은 모를 추려 심었다. 천 평 논에는 찰벼를 5월26일 이앙기로 심었고 삼방리 포장에는 6월 초순에 70여종의 벼를 손모내기로 심었다. 모는 지난 4월30일 볍씨를 파종해 육모해 온 것이다. 지금 시절에 논은 심은 모들이 흙내를 맡아 땅심을 먹으며 한창 가지치기(분얼)를시작하고 있다.
 
스티로폼 상자 논을 가꾸는 것은 좋아서다. 가까운 곳에 놔두고 아침저녁으로 자라는 모습 보면서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벼는 물관리를 해주면 잘 자란다. 재배가 까다로운 식물이 아니다. 6월에 모를 심어기르면 늦가을까지 볼 수 있으니 원예용으로도 좋다. 벼를 심어 보시라. 늘 먹는 것이 쌀밥인데 이 또한 심어볼만한 까닭이 되지 않겠는가. 이 상자 논은 비록 몇분의 일 평에 불과하지만, 또 나가면 들에 논이 펼쳐있지만, 자신이 직접 심어 자라는 모양을 가까이서 대하며 하루이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는, 하루의 활력소가 돼준다. 

 

아주 오랜 옛날, 아주 많이 시간을 거슬러올라간 시대에 한 민족이 있었는데 그들을 지켜오던 신이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은 신의 신체부위에서 곡식 씨앗이 나왔다. 눈, 코, 입, 배꼽, 음부에서. 조, 보리, 수수 등이. 그들은 그 씨앗을 귀히 여겨 내다 심었다.
 
천상에서 태양신의 여인이 내려왔는데 죽은 그녀의 몸에서 곡식 알톨이 나왔다. 사람들이 이를 귀히 여겨 심기 시작했다. 해마다 곡식을 수확하면 일찍 거둔 햇곡식을 정성스레 신에게 바쳤다.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사직단을 세워 제사 지냈다.
 
여러 민족의 고사에는 그들이 심고 거두고 일용하는 곡식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오랜 역사시기에 걸쳐 유지해온 농경사회는 농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양, 대지, 물을 신으로 숭배하고, 스스로 씨앗이 싹터 알곡을 맺는 것도 신비한 영적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씨앗이 자라 무성해져 지구를 푸르게 덮고 인간이 그것을 먹고 비로소 살 수 있다는 것은 우주에서도 신비로운 일이고 귀신 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예컨대 쌀의 경우도 도령(稻靈), 즉 쌀은 그저 먹을거리가 아닌 신령한 살아있는 영물로 여겼다.
 
쌀을 주식으로 먹게 된 건 긴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결코 길지 않다. 우리의 경우도 오랜 역사시대에 걸쳐 잡곡이 주식이었고 쌀을 다수 사람이 먹게 된것은 토지 생산력과 벼 재배기술이 발전된 이후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나라의 경우도 국민 다수가 먹게 된 것은 오래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경우도 근세에 이르기 까지 쌀은 특수신분이나 먹는 귀한 곡식이었다.
 
벼 재배 시기는 현재 1만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 유적의 이탄층에서 4천500∼5천 년 전(1991년)의 볍씨가 발굴된 적이 있고 이외에도 2천~4천년 전의 볍씨가 경기도 김포군, 경기도 여주군, 평양시 , 충남 부여군, 경남 김해시 등지에서 출토됐다. 가장 최근에는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1만 5천년 전후의 볍씨 59톨이 출토된 바 있다. 
 
벼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의 식량자원이다. 사람이 벼 덕분에 산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쌀, 밀, 옥수수가 3대 식량자원인데 지구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쌀을 주식으로 한다. 쌀은 어느 작물보다 토지 단위당 수확량이 높다. 제한된 토지면적으로도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쌀이
모든 영양물질을 제공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쌀이 품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비타민조성물질은 아주 우수해서 다른 작물과 비할 바 못된다.
 
우리에게는 정서적으로도 밀접한 작물이다. 먼 길 떠나는 자식에게 따순 쌀 밥먹여 보냈고, 지치고 아픈 몸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쌀로 만든 미음이었으며, 생쌀을 씹는 것만으로도 고픈 밤길에 힘을 보태준 시절이 있었음을 우린 알고있다. 쌀은 우리에게 현실이기도 했지만 마음이고 정신이고 모체였다. 

 

화분과 스티로폼 상자에 세해째 심어 보는데 벼 심기에는 스티로폼 상자가 편리한 것 같다. 화분도 괜찮다. 물빠짐 구멍을 잘 막아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물이 빠지지 않은 것이 재배가 편하다. 벼 화분도 늦봄과 여름 사이에 도시 꽃가게에서도 팔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알려지면 제법 팔릴 것이라 생각한다. 쌀 만큼 사연이 많은 식물이 또 없다.
 
벼는 품종도 많다. 조선시대 편찬된 농업관련 기록에는 적어도 수십종의 벼가 등장한다. 필리핀 소재 국제미작연구소(國際米作硏究所/IRRI)에는 수만 품종을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종의 다양성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지금 농촌에서 심는 벼는 추청벼가 대부분이어서 여름,가을 논의 색깔이 단조롭지만 다양한 품종이 심어진다면 논은 꽃밭처럼 될 것이다. 품종에 따라 이삭의 색이 개성적이어서 녹미, 홍미, 조도, 흑미 등 각종 색깔의 벼가 물결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에는 모내기가 국가적 연례행사 였다. 모내기는 못줄 잡아옮기며 손으로 심었다. 대통령도 6월초 모내기철이면 비록 관행적이었더라도 논에 나가 농민과 들판에 앉아 막걸리 마시며 농업을 대우했다. 국민들은 그 장면을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다. 당시는 석탄캐는 탄광 갱도와 광부를 찾아가는
것도 정치인들의 주요한 일정이었는데 쌀과 연탄은 생활을 받치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지나간 일이 되어서 농업은 갈수록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 같다. 모내기 풍경도 달라졌다. 이젠 이앙기로 심으며 천평 논 모내기도 1시간 남짓이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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